어김없이 짧은 바늘이 1시를 가리키는 이 시각, “딸랑” CU공릉사거리점의 문이 열립니다. “어서오세요” 대신 “오셨어요?” 라며 얼른 문간으로 나가는 박두원 점주님. 이것은 CU에서 꽃핀, 아주 귀하고 소중한 ‘좋은 친구’의 이야기입니다.

CU공릉사거리점 지킴이는 두 명
매일 1시, CU공릉사거리점에는 박두원 점주님 외에 또 다른 지킴이가 한 명 나타납니다. 모자를 깊게 눌러쓰고 휠체어에 타신, 나이 지긋한 어르신이시죠. CU 문 앞까지 휠체어를 밀고 온 요양보호사님에게 자연스럽게 손잡이를 넘겨받곤 “으쌰” 하며 편의점 안으로 향하는 박두원 점주님. 어르신이 앉아 계신 휠체어가 제법 무겁지만, 익숙해진 만큼 휠체어는 부드럽게 계산대 맞은편에 자리를 잡습니다. 편안히 자리를 잡으신 어르신을 확인한 점주님은 휠체어 옆 의자에 물과 그릇을 가져다 두고, 그 위에 따뜻한 고구마를 반 잘라 둡니다. 신문을 하나 빼서 드리는 일도 잊지 않죠. 점주님으로부터 신문을 건네받은 어르신은 이내 장갑 낀 손으로 신문 앞 면을 펼치시고, 그때 들어온 다른 고객도 휠체어를 향해 가볍게 인사합니다. 마치 짜맞춘 듯, 자연스럽고 편안한 일상의 리듬. 어떤 요란함도, 부산스러움도 없는 일상에 신기하게 시선이 머물 뿐입니다.
오후 1시부터 5시, 매일 CU공릉사거리점으로 출근(?)하시는 어르신의 연세는 무려 100세가 넘으셨다고 합니다. 오후 4시, 점주님은 어르신과 함께 퇴근하지요. 함께 주변 화랑숲을 한 바퀴 산책한 뒤 댁으로 모셔다 드리는 것이 하루의 일과입니다. 어르신은 점주님의 아버지도 친척도 아니에요. 다만 동네에서 오래 이웃해 지낸 고객이셨다고 하는데요. 100세 어르신이 매일 CU공릉사거리점에 들르는 데에는 조금 특별한 사연이 숨어 있습니다.
단골 고객님의 마지막 소원
30년. 박두원 점주님이 CU공릉사거리점을 운영한 햇수입니다. 그 오랜 세월 동안 한 동네에서 점포를 운영하다 보니 모르는 주민이 없어요. 주민들 역시 대형 마트가 생기거나 새로운 편의점이 문을 열어도 CU공릉사거리점만 찾습니다. 매일 할아버지의 휠체어를 밀고 산책길에 들러 크고 작은 요기거리를 사가시던 할머니 역시 이곳의 단골 고객이셨다고 합니다.

“어느 날 할머니께서 제게 가만히 말씀하시더라고요. “저기, 내가 할 말이 좀 있어요. 내가 아무래도 더 이상 못 버틸 것 같어”라고요. “아니, 무슨 말씀이세요” 그랬더니만 “내가 보다시피 나이가 많은데… 우리 영감은 나보다도 나이가 많잖아. 근데 영감이 나보다 더 건강해. 나는 90세고 우리 영감이 100세인데 내가 영감보다 일찍 갈 것 같어” 그러시면서 “우리 영감을 좀 부탁한다”고 하셨습니다. 자녀 가운데 둘은 외국에 살고, 하나는 같이 살고 있지만 매일 일하러 나가시니까 할아버지는 할머니 몫이었거든요. 그런데 당신이 하늘에 가시고 나면 산책시켜 줄 사람이 없다고 하셨어요. 염려 마시라고, 그리고 건강해 보이시는데 그런 말씀 마시라고 그랬어요. 그런데 정말로 얼마 안 있다 할머니께서 돌아가셨습니다. 어쩌겠어요. 그렇게 어르신을 뵙게 됐지요.”
콩 한 쪽도 어르신 하나, 점주님 하나
매일 오후 한 시, 어르신의 따님이 출근을 하거나 볼일을 보러 나가며 편의점에 데려다 드리면 어르신은 그때부터 점주님 맞은편에 앉아 졸기도 하고 신문도 보시며 시간을 보내십니다. 겨울에는 또 하나의 루틴이 생기죠. 바로 옆 가게에서 붕어빵을 사와 어르신 하나, 점주님 하나 사이 좋게 나누어 먹는 것입니다. 붕어빵 다음으로는 CU의 꿀고구마도 반으로 잘라 두고 한김 식혀 먹습니다. 점포가 잠시 한갓질 때 고구마를 숟가락으로 얇게 떠 드리면 그렇게 좋아하신다고요. 친아들, 친손자도 하기 어려울 듯한 돌봄 생활을 해온 지 벌써 3년, 그래도 점주님은 힘들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습니다.

“우리 어르신은 나라에서 특별히 섬기는 각별한 분이지요. 참전용사 출신으로 베트남 전쟁을 비롯한 국가의 주요 전쟁에 모두 참전하셨어요. CU로 외출하실 때에도 꼭 훈장이 달린 옷을 입고 오십니다. 그 힘든 전쟁을 일곱 번 참전해서 모두 살아오신 분이니까 대단하지요. 내가 어릴 때 우리 아버지가 돌아가셨거든요. 1977년도에. 내가 아버지께 뭐 해드린 기억이 없는 게 참 안타까운데, 지금 이렇게 어르신을 챙겨 드리는 게 나한테는 위안이 되기도 해요.”
이곳은 늙지 않는 편의점
30대 후반에 편의점 운영을 시작한 점주님도 어느덧 70대에 접어들었습니다. 동년배 친구들은 키오스크 주문이나 스마트폰 조작도 어려워하지만, 지금까지도 편의점 일을 해오는 점주님은 덕분에 천천히 늙는 것 같다고 합니다.
“편의점은 손님도 젊은 층이 많고, 같이 일하는 스태프들도 20대가 많잖아요. 평생 젊은 사람들과 일을 해왔고, 또 뒤처지지 않으려고 노력하다 보니까 나도 또래에 비하면 젊게 사는 것 같아요. 어쩌다 다른 점주님들 상대로 본사에 강의를 갈 때 내 나이를 말하면 다들 농담하지 말라 그래요. (웃음) 그럼 제가 “CU에서 일하는 게 내 젊음의 비결이다” 그러죠. 실제 나이가 어떻더라도 고객들이랑 편하게 얘기하려면 정신이 늙지 말아야 해요. 나를 보고 자란 동네 애들은 내가 어르신이라고 생각해도 편하게 아저씨라고 부르면서 고민 상담도 해오고 그러거든요. 어른의 입장에서 현명하게 판단해 주려고 하지만 꼰대처럼 잔소리는 절대 안 해요. 나는 동네 어르신들을 모셔도 젊은 친구들은 나를 편하게 대해주는 게 좋거든요.”

말 한마디를 건네도 친근함이 뚝뚝 묻어나는 점주님 때문인지 사거리 길목에 위치한 CU를 지나치지 않고 들르는 동네 주민들도 보통 고객과는 달라 보입니다. 모든 고객들이 점주님과 꼭 한 마디쯤은 안부를 나누니까요. 상품에 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가족의 최근 대소사, 어제 있었던 일, 날씨를 비롯한 요즘 뉴스 이야기까지 정말 다양한 소식들이 계산대 앞에서 오고 갑니다.
“외관은 세련된 요즘 편의점일지라도 나는 여기가 옛날 동네 ‘점빵’과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CU가 얼마나 신상품도 다양하고 트렌드를 잘 읽어요. 점포와 상품은 트렌디하고 있을 것 다 있지만, 그 분위기는 시골 마을에 하나 있는 슈퍼 같으면 좋겠다고도 생각해요. 마을 사람들이 편하게 드나들고, 꼭 물건 사러 오는 게 아니라 그냥 지나가다 인사 나누고 그런 가게 말이죠. 그래야 내 경쟁력도 생긴다고 생각하거든요.”
사람 옆에서 함께한 지 삼십 년
“제가 편의점 점주 경력만 30년인데, 그 사이에 얼마나 많은 스태프와 고객들을 만났겠어요. 이 바코드를 찍은 횟수만 따져도 우리나라 인구 수를 훌쩍 넘을 거예요. (웃음) CU 전신이었던 패밀리마트 때부터 편의점을 했으니까 아마 거의 전국 1호점에 가깝겠죠. 가끔 지나가던 고객이 들러서 “점주님, 저 누군지 기억 안 나세요?” 할 때가 있는데, 자세히 보면 우리 점포에서 스태프로 일했던 대학생이야. 어느덧 머리가 희끗해져서 눈시울이 붉어져 있어요. 대학생이던 친구가 50대 될 때까지 나도 편의점을 하고 있으니 별의별 일 다 겪었죠. 다른 지역에서도 장사해 봤는데, 이 동네가 제게 특히 소중해서 지금은 이거 하나 하고 있어요. 이 지역 아이들 자라는 것도 다 봤고… 동네 사람들이 저한테 이거 저거 다 부탁하고 맡기기도 해요. 사실 보통 편의점에는 하지 않을 부탁도 해오시는데, 그게 저는 귀찮은 일이라고 생각을 안 해요.”

아니나 다를까, 점주님과 대화를 나누던 중 한 고객이 “금액이 얼마 남아 있는지 모르겠다”며 열 장이 넘는 티머니카드 뭉치를 내밉니다. 각 카드에 몇백 원씩 남은 듯한데, 그것으로 삼각김밥을 구매하고 싶다고요. 귀찮을 법도 하지만 선뜻 받아든 점주님은 단말기로 척척 금액을 확인한 후 삼각김밥을 결제해 드립니다. 잠시 뒤엔 문 바깥에서 휠체어를 탄 고객이 손짓으로 점주님을 부릅니다. 익숙하게 눈을 맞춘 점주님이 “아, 저 고객님은 이거” 하시곤 대번에 담배 하나를 들고 마중 가지요. 그뿐인가요. 한 여성 고객이 들어오더니 “곧 우리 애가 찾으러 올 테니 전해 주시겠어요?” 하며 책을 하나 맡기고 나가기도 합니다. 어떤 고객은 아무것도 사지 않고 잠깐 들러 점주님과 눈인사만 하고 나가기도 하고, 또 어떤 고객은 “집에 가는 길에 샀는데 나눠 먹자”며 붕어빵을 전해주기도 합니다. 고객이 누군지, 아이가 몇 살인지까지 점주님은 다 꿰고 있습니다.
풍족한 마음 밭을 일구며
그 긴 시간 동안 다른 기회도 많이 만났습니다. 투자도 하고, 다른 일도 하면서 돈도 많이 벌 수 있었겠지만 점주님은 그보다 나누는 삶을 지향했습니다. 주변 ‘아름다운 가게’ 봉사자들에게 시급을 나눠주고, 기부를 하고, 배고픈 사람이 점포를 찾으면 식품을 거저 나누기도 합니다. 매일같이 몸이 불편한 어르신을 챙기는 일도 점주님에게는 고되게 느껴지지가 않습니다.

“앞으로 나 역시 늙어가겠지요. 힘이 있는 동안에는 얼마든지 해드리고 싶어요. 한 시간 이르게 퇴근해서 잠을 더 자면 무엇이 남겠어요. 대신 이렇게 함께 산책하면서 저도 운동하고, 어르신도 좋고. 그러면 모두가 행복하잖아요. 매일 나와서 사람들 사는 것 구경하면 어르신도 더 건강해지시고요. 저는 잘 사는 사람, 높은 사람들 하나도 부럽지가 않아요. 아마 가난한 사람 중에는 내가 제일 부자일 거니까요.”
새로이 밝은 2025년, 점주님에게는 계획이 하나 더 생겼습니다. 올해 12월에 따님의 결혼식이 예정되어 있거든요. 식을 잘 치르고 나서는 다시 평화로운 오늘로 돌아와 일상을 감사히 지내고 싶습니다.
“우리 딸래미가 “하고 싶은 공부도 끝까지 잘 마치고, 이제 결혼도 알아서 할 테니 아빠는 날짜만 비워두라”고 하더라고요. 올해 딸도 잘 시집보내고, 저나 어르신이나 올해 겨울도 건강하게 나고. 그리고 다시 돌아올 봄, 여름에 열심히 산책도 하고. 그렇게 무탈히 지내고 싶어요.”

인터뷰. 박두원 점주님(CU공릉사거리점)
글. 김송희
편집. 성지선
사진. 안호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