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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뒤의 나에게
편지를 쓴다면 어떤 말을 가장 먼저 적고 싶으신가요? 제주 사계해변 앞에는 오늘을 담은 편지를 1년 뒤에 보내주는 특별한 편의점이 있습니다. 바다가 보이는 창가에서
사진을 찍고 엽서를 한 장 골라 천천히 편지를 쓰는 곳. CU서귀사계포구점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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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체통이
왜 여기서 나와?
파란 사계 바다 앞에 있는 CU서귀사계포구점에 들어서면 유독 시선을
잡아끄는 것이 있습니다. 노란 꽃으로 장식된 새빨간 우체통인데요. 이뿐만
아니라 편의점 한쪽 공간에는 엽서를 쓸 수 있는 작은 테이블과 펜이 놓여 있습니다. 여기가 편의점인지, 여행지의 작은 우체국인지 잠시 헷갈릴 정도죠. 엽서를 적고 우체통에
넣으면 실제 우체국을 통해 1년 뒤 원하는 주소로 편지가 배달됩니다.
1년 뒤 잊고 있던 제주의 기억이 건너오는 셈입니다.
편지를 다 썼다면 이제 그냥 우체통에 넣으면 되냐고요? 바로 옆에
있는 영수증 사진기를 그냥 지나치기는 아쉽습니다. 사진을 찍으면 잠시 뒤 기계 아래에서 흑백 사진 한
장이 쓱 하고 나옵니다. 거창하게 포즈를 잡을 필요도 없습니다. 막
바다에서 돌아온 얼굴도, 하루 종일 돌아다녀 조금 지친 모습도 그대로 좋습니다. 오히려 그런 모습이 몇 년 뒤에는 가장 여행다운 사진으로 남을 테니까요. 사진을
편지에 붙이고 우체통에 넣으면 준비는 끝입니다. 이제 남은 일은 하나,
잊어버리는 것. 편지를 썼다는 사실조차 까맣게 잊고 일상을 보내다 어느 날 우편함에서 엽서를
발견한다면 어떨까요. 어쩌면 그때 여행이 한 번 더 시작될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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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건 이 공간이 처음부터 느린 우체통을 위해 만들어진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점포가 확장되면서 활용하기 애매한 공간이 생겼고, 여기에서 고민이 시작됐습니다. 그냥 비워둘 바에는 고객이 직접 무언가를 경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면 더욱 좋은 법이죠. 그렇게 평범한 유휴공간이 제주 여행의 하루를 기록하는 장소로 변신하게 됐습니다.
좌측부터 강우승 책임, 조미숙 점주님, 이우근 책임
감다살
아이디어의 재탄생
편의점 앞 사계해안 일대를 걷다 보면 바닷길을 따라 달리는 사람들을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습니다. 형제해안로를 비롯해 주변 풍경이 워낙 좋아 러닝을 즐기는 여행객과 러닝 크루가 자주 찾는 곳이죠. 그래서 이 공간의 첫 번째 후보는 러닝스테이션이었습니다. 러너들이 달리다 잠시 들어와 숨을 고르고, 간단히 스트레칭한 뒤 다시 해안도로로 나갈 수 있는 작은 거점. 제주라는 지역성과도 제법 잘 어울리는 아이디어였죠. 하지만 실제 공간의 크기와 운영 여건을 검토하면서 러닝스테이션에 필요한 기능을 충분히 담기 어렵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첫 아이디어는 결국 무산됐지만, 그렇다고 방향까지 사라진 건 아니었습니다. ‘이 점포에서만 할 수 있는 경험을 만들어주자’는 생각은 그대로였죠. 강우승 책임을 중심으로 다시 아이디어를 모은 끝에, 러닝 대신 추억을 머물게 하는 공간이 탄생했습니다. 1년 뒤의 나에게 편지를 보내는 느린 우체통이 그 주인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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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근 책임 처음에는 러닝스테이션처럼 만들려고 했어요. 그런데 한 번 방향이 틀어지면서 저도 사실 첫 번째 좌절감을 느꼈죠. 그래도 팀에서 계속 다른 방향을 같이 고민해 주셨고, 결국 점포 특성에 맞는 느린 우체통이라는 컨셉을 찾게 됐습니다.
강우승
책임 우체통에 넣을 엽서는
어떻게 만들까 고민을 많이 했는데요. 단순히 예쁘게 만드는 것보다 지역 주민들과 같이 만들어가는 것이
더 오래 기억에 남는다고 생각이 들었어요. 이 지역에서 살고 있는 아이들이 느끼는 모습을 그림으로 그리고, 그 작품이 실제 엽서가 돼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되는 경험 자체가 아이들에게도 좋은 추억이 됐으면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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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서
속에는 이런 사연이
느린 우체통에 넣는 엽서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조금 독특합니다. 흔히 관광지에서 볼 수 있는 근사한 풍경 사진 대신, 어딘가 투박하면서도 정겨운 그림 속에 산방산과 제주 풍경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그림의 주인공은 전문 작가가 아닙니다. 바로 이 지역에 살고 있는 사계초등학교 학생들이죠. 엽서에 어떤 제주를 담을지 고민하던 강우승 책임은 한 가지 생각을 떠올렸습니다. 멋진 풍경 사진도 좋지만, 이왕이면 ‘이곳에서 실제로 살아가는 아이들이 바라본 제주’를 담아보자는 것이었죠. 그렇게 사계초등학교에 직접 연락해 ‘산방산, 사계해안, 해녀, 내가 생각하는 제주’ 등을 주제로 그림 공모전이 열렸습니다.
![1786668087397697_[BGF Live] 매거진_내지_06_0812.png](/assets/upload/image/editor/2026081409412786686379.png)
강우승 책임 학교에 갔더니 그림을 정말 한 뭉치로 주시는 거예요. 그래서 그림이 왜 이렇게 많은지 여쭤봤더니 거의 전교생이 다 같이 참여했다고 하시더라고요. 90명 정도였어요. 그때는 학생들에게 정말 고마웠죠.
공모전 참여작이 많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지역의 작은
학교인 데다 수업 일정도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여기서 예상 밖의 일이 벌어졌습니다. 작품을 받으러 학교에 간 강우승 책임 앞에 놓인 것은 몇 장의 그림이 아니라 두툼한 그림 한 뭉치였습니다. 사계초등학교는 학년별로 한 반씩 있는 작은 학교인데 전교생 약 90명이
거의 모두 공모전에 참여한 것이었죠. 한 작품만 선정하려던 계획도 바뀌었습니다. 학교에서 먼저 추린 11개 작품을 다시 심사한 끝에 최종적으로 두
작품을 선정해 엽서로 제작했습니다. 아이들의 그림은 엽서에만 머물지 않았습니다. 점포 한쪽 벽을 채우는 전시 작품이 되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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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공간이 문을 연 지 오래되지 않은 만큼, 느린 우체통을 알고 일부러 찾아오는 고객보다 우연히 발견하는 고객이 더 많습니다. 장을 다 보고 계산까지 마친 뒤, 점포 한편의 빨간 우체통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는 식이죠. “이건 뭐예요?” 하고 먼저 묻는 손님도 있고, 설명을 들은 뒤 다시 엽서를 골라 자리에 앉는 분들도 있습니다. 가족 단위 관광객부터 젊은 커플까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만난 작은 체험에 자연스럽게 한 번 더 머무는 모습입니다.
조미숙 점주님 모르고 들어왔다가
편지를 쓰는 공간을 보고 물어보시는 분들이 있어요. 이미 물건을 다 사고 난 다음에 발견하는 경우도
있고요. 일정 금액 이상 구매하면 엽서 한 장을 드리고, 따로
천 원에 구매하실 수도 있는데요. 설명해 드리면 엽서를 사서 직접 체험해 보시고는 하죠. 영수증 사진기도 처음엔 어렵지 않을까 싶었는데 생각보다 정말 간단해요. 저도
컴퓨터를 잘 다루는 편은 아닌데 쉽게 할 수 있더라고요. 저라도 여행 와서 이런 게 있으면 한 번 찍어볼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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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서 색다른 CU를 만날 수 있는 곳은 이곳뿐만이 아닙니다. 제주 가볼 만한 곳을 찾는다면 편의점도 하나의 선택지가 될 수 있는 거죠. 애월 바다를 품은 제주씨앤블루점에서는 오션뷰를, 혼저옵서예점에서는 서쪽으로 떨어지는 근사한 노을을 만날 수 있습니다. 편의점에 잠시 들렀을 뿐인데, 어느새 바다를 보고 노을까지 챙겨 갑니다. 제주에서는 편의점도 제법 여행다운 순간을 만들어주니까요.
편지
배달 왔습니다💌
지금 쓴 몇 줄의 문장과 사진 한 장이 1년을 돌고 돌아 어느 날 다시 나에게 도착한다면, 그때 제주의 추억까지 줄줄이 따라올지도 모릅니다. 무려 1년을 기다려야 도착하는 편지라니. 조금 느리고 번거로워서 오히려 기억에 남는 게 아닐까요? 사계 해변에 들렀다면 잠시 CU서귀사계포구점에도 들어가 보세요. 사진도 한 장 찍고 빨간 우체통에 ‘오늘’을 툭 넣어두는 겁니다. 1년 뒤, 잊고 있던 제주가 다시 찾아올 테니까요.
유튜브 @테헤란로405 채널에 소개된 CU서귀사계포구점
인터뷰. 이우근 책임(BGF리테일
상생협력1파트), 강우승 책임(BGF리테일 제주영업4팀), 조미숙 점주님(CU서귀사계포구점)
촬영. 김홍일
글·편집. 김도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