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라 일찍 해가 지기 시작하는 저수지 위에 검은 새 무리가 기호를 그리며 힘찬 날갯짓을 합니다. 여름까지 시베리아 지역에서 머물다가 겨울에 한국을 거쳐 이동하는 겨울 철새들에게 주남저수지는 이동 경로 중 잠시 쉼을 청하는 곳입니다. 철새무리를 멀리서 관찰할 수 있는 저수지 탐조대에는 두꺼운 패딩을 입은 아이들이 “새다 새!”를 외치며 펭귄처럼 뒤뚱뒤뚱 걷고 있습니다. 관광객들이 탐조대와 전망대에서 새를 구경한다면, 전문 사진가들은 그보다 조용하고 은밀한 곳으로 깊숙이 몸을 숨깁니다.

오늘의 주인공 CU마산상곡점 이광호 점주님을 따라 주남저수지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니 노을 뒤로 철새가 ‘ㅅ’자를 그리며 이동하는 모습이 장관입니다. 철새가 이동하는 시기에는 이른 새벽부터 주남저수지에 카메라를 펼쳐 두고 바람이 부는 방향, 해가 뜨고 지는 시간, 새의 종류마다 이동하는 모습을 관찰하고 사진으로 기록하는 것이 그의 일과 중 하나인데요. 이날도 새벽 5시에 일찌감치 저수지에 나와 새를 촬영했습니다. 평소에는 편의점 점주로 일상을 살지만, 설산의 소나무나 철새, 그 중에서도 특히 희귀한 새나 두루미를 촬영하는 것이 사진작가 이광호의 특기입니다. 이렇게 산과 들을 다니며 자연을 카메라로 기록하고, 아름다움을 포착해 찰나로 남깁니다.
카메라와의 첫 조우
이광호 점주님이 처음 카메라를 손에 쥐었던 때는 70년대 후반이었다고 해요. “군장교로 있던 매형이 막내동생처럼 예뻐하셔서, 카메라를 선물로 주셨어요. 그 당시에 카메라가 얼마나 귀해요. 처음에는 잘 사용하지 못하다가 82년도부터인가, 본격적으로 찍기 시작했어요.” 등산을 취미로 가지면서 사진을 많이 찍게 됐다는 이광호 점주님. 등산도 동네 가까운 산을 다닌 게 아니라, ‘백두대간을 다 가보겠다’며 전국 팔도의 산을 안간 곳 없이 올랐답니다. 정상을 밟은 후에 주변을 휘 둘러보면 그 풍광이 너무 아름다워 남기지 않을 수 없었다고요. “깊은 산 정상에 오르면 운무가 깔리면서… 그게 얼마나 아름다운지 몰라요. 이왕 산에 가는 것 카메라로 이 순간을 남기자, 해서 처음엔 산 사진을 많이 찍었죠.”
렌즈에 담기는 단 하나의 빛
처음에는 구도가 뭔지도 모르고 열심히 사진기를 들고 다녔습니다. 그러다 80년대쯤 좋은 디지털 카메라를 장만하고 나서는 자연스럽게 사진에 열중했지요. “산을 찍다 보니까 다른 사람들 사진과 차별성이 없더라고요. 산은 누가 어떤 구도로 찍어도 다 비슷하게 나오잖아요. 그래서 그때부터 ‘나만의 사진을 찍어야겠다’ 싶어 빛을 연구하기 시작했죠.” 사진작가 이광호의 특징은 빛을 남다르게 담는 것입니다. 같은 빛이라도 공기와 시간에 따라 다른 색을 가집니다. 그때를 포착하는 것이 작가로서 그의 특징입니다. “기술이 발전해서 보정 프로그램 같은 것으로 하늘 색을 바꿀 수 있다고 해도, 실제와는 천지 차이죠. 나는 그건 진짜 사진이 아니라고 봐요. 나는 빛을 다룰 줄 아는 사람이거든요. 이렇게 기다려서 빛이 변하는 그 순간을 찍는 거죠.” 같은 꽃과 하늘, 산과 나무라고 해도 그의 사진 속에선 자연물이 마치 생동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사진이 아니라 동영상을 보는 것처럼 생생한 빛을 담은 까닭입니다.

직접 봐야 알아요
근작에는 두루미 사진이 많습니다. 이광호 작가는 두루미의 이동경로를 머릿속에 다 외우고 있습니다. “지금은 순천에 흑두루미 2~3천 마리가 있을 시기예요. 이 애들이 일본으로 날아가기 전에 (주남저수지에) 머무는 거죠. 겨울 되면 마산에 종착했다가 시베리아로 넘어가요.” 2023년 12월 중순에는 DMZ 민통선의 허가를 받아 보름 정도 새를 촬영할 계획입니다. “12월 중순부터 말까지 새를 찍으러 DMZ로 들어가요. 허가 받은 몇몇 사진작가들과 함께 새를 기록하는데, 거기 있는 동안에는 숙소에서 머물면서 새벽에 나와 새를 찍어요. 이 애들이 자기들끼리 모여 잠을 자다가 시간에 따라 깨어 움직이거든요. 그 순간 순간의 변화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몰라요. 직접 보지 못한 사람한텐 말로 설명할 수가 없죠.”
또 다른 꿈을 꾸며
이광호 작가가 점주로 변신하는 마산상곡점에는 그가 직접 찍은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간혹 손님 가운데 “이 사진은 누가 찍은 거냐” 묻는 사람도 있지요. 전국 각지에서 열리는 사진공모전에 출품만 하면 입상을 거머쥐는 그이지만, 이제는 공모전에도 작품을 잘 내지 않습니다. ‘찍기만 하고 잘 정리를 하지 않는 게 문제’라며 쌓아둔 메모리를 보여주는 그입니다. “상도 숱하게 탔죠. 이걸 다 정리해서 전시를 한 번 하고 싶어요.”

가장 중요한 두 가지 일
3년 전 CU를 연 이후에는 예전처럼 활발히 출사를 나가지 못하는 게 아쉽지만, 지금도 틈만 나면 주남저수지에 오고 싶다고 합니다. “아내 고향이 창원이에요. 딸애 공부도 시킬 겸 아내도 편하라고 이 지역으로 내려와서 편의점을 열었죠. 원래 하던 일을 나이가 들어 정리하면서 지금은 CU 점주와 사진작가가 저한테 가장 중요한 일이고요. 앞으로도 계속 이 두 가지를 병행하면서 잘 해나가고 싶어요. 그러려면 건강 관리를 잘 해야죠. 사진 찍으러 나갈 때마다 건강도 챙기려 신경 쓰고 있습니다.”
MINI GALLERY
by Kwang-ho Lee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그 순간의 빛을 포착한 진짜 사진에는 당해낼 수 없다’고 장담하는 이광호 작가의 사진을 뭐라 설명하면 좋을까요. ‘BGF LIVE에서의 작은 웹 전시회를 열고 싶다’ 했더니 그의 소중한 작품 여럿을 보내왔습니다. 말로 설명하기보단 함께 보는 게 더 좋을 것 같습니다. 그 여운, 함께 즐겨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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