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이후 국내에 핸드드립 문화를 알린 ‘1서3박(고 서정달, 고 박원준, 고 박상홍, 박이추)’, 그중에서도 현역으로 활동하는 유일한 사람. 바로 박이추 명장입니다. 강릉에 커피문화를 꽃피운 전설인 그가 2024년에는 get커피와 손을 잡고 새로운 커피문화를 일굽니다. 동해와 긴 허리를 맞댄 박이추 명장의 보헤미안로스터스에서 커피와 사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뜨거운 물줄기가 닿자마자, 드리퍼에 가득 담긴 원두가 놀란 듯 순식간에 부풀어오릅니다. 빵처럼 동그랗게 차오른 원두 위 거침없이 물줄기를 지휘하는 명장의 손길. 코끝에서 머물던 강릉바다 짠내는 어느새 자취를 감추고 묵직한 커피향이 은은하게 사위를 맴돌고 있습니다.
눈앞의 사람을 위해서도 아니고, 나 자신을 위해서도 아니고, 그저 커피를 위한 커피를 내린다는 박이추 명장. 안경 너머 뚫어져라 물줄기를 지켜보는 명장을 보노라면 ‘커피를 내린다’기보다는 ‘커피를 읽는다’는 말이 더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40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커피를 완독한 그의 눈빛에서는 장인의 자부심이 원두의 진한 색으로 우러납니다. 오랫동안 외길을 걸어온 박이추 명장과 BGF리테일 사이 닮은 구석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진심’, 두 글자로 답하고 싶습니다.
1988년 서울 혜화동에서 시작한 보헤미안 커피가 이제 강릉에서 세 군데나 자리 잡았습니다. 혜화동에 계실 때 서울 커피문화가 부흥했고, 강릉에 오시면서 커피거리가 조성된 사실을 반추해보면 걸음마다 커피가 꽃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명장의 첫 커피는 어땠을지 궁금한데요.
글쎄요, 커피를 마시는 순간에 ‘불이 번쩍’ 하지는 않았습니다. (웃음) 도시에서 처음 커피를 마셨던 기억이 나는데, 그때는 그냥 커피일 따름이었어요. 당시에 제 꿈이 커피가 아닌 목장이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살아가는 방법으로 커피를 택한 때가 아니었으니까요.
목장의 꿈을 꾸시던 때로 돌아가볼까요. 재일교포2세로서 협동농장의 꿈을 이루기 위해 포천에서 목장을 일구셨죠. 경기도 광주와 강원도 원주 문막에서도 소를 키우셨고요. 그러다 일본으로 다시 돌아가 커피를 배우셨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씨앗을 뿌려 재배하고 키우는 걸 좋아했어요. 자연스럽게 시골에서 농장을 운영하려는 꿈을 꾸었죠. 1970년대 초 한국에 발을 딛고 목장을 여러 번 운영했지만 뿌리를 내리지는 못했어요. 땅 소유권을 둘러싼 갈등이 깊어지면서 시골 생활에 넌더리가 났고, ‘도시에서 살아 보고 싶다’는 생각에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 요식업에 뜻을 두었습니다. 요리도 배우고 음료도 배웠지요. 그때는 무엇인가를 단호하게 선택한다기보다 마른 습자지에 물이 스미듯 뭐든지 받아들이고 익혔어요. 배움이 정리될 때쯤 한 가지 특기에 집중해야겠다는 판단을 내렸고, 그 끝에 만난 것이 커피였습니다.

일본에서 커피 공부를 하셨잖아요. 낮에는 공사판 덤프트럭을 운전하고, 저녁에는 학원을 다니며 주경야독하셨을 정도로 열정이 남다르셨다고요. 커피의 어떤 매력에 그토록 끌리셨을까요?
그땐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였어요. 그러니 빨리, 그리고 열심히 할 수밖에 없었죠. 약 1년4개월간 주어진 시간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어려움을 느낄 새도 없었어요. ‘인생의 시작’이라는 생각이 저절로 저를 이끌었죠. 완벽하진 않지만 도전의 성과가 조금씩 이루어질 때, 바로 그 과정이 행복과 기대감, 그리고 더 나아갈 용기를 주었습니다. 하루하루가 힘든(?) 행복이었던 셈이지요.
그 이후 1988년 서울 혜화동에 처음으로 ‘가배 보헤미안’을 차리셨습니다. 한국에서는 핸드드립 커피가 매우 생소하던 때였죠.
핸드드립 커피를 잘 모르는 사람이 많았고, 그래서 당황하는 분들도 계셨습니다. 하지만 차츰 익숙해지면서 즐기시는 분들이 늘어났죠. (생각하다)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멀리 인천에서 오시던 한 손님이 기억납니다. 진료를 받았는데, 의사가 ‘당신은 커피를 마시면 안 된다’고 했다고요. 그래도 포기할 수 없어 한 달에 한두 번은 힘든 걸음을 하시고 커피를 즐기다 가셨지요. 그분에게 있어 커피는 독약이었지만 또한 행복이셨던 겁니다.
커피가 흔하지 않았던 그 시기, 품질 좋은 원두를 공수하기도 힘드셨겠는데요.
처음에는 우리나라에서 커피를 구하기 힘들어 지금의 대기업에서 원두를 구해다 썼습니다. 하지만 만족할 수 없어 매번 일본으로 직접 가서 생두를 구해와 로스팅해서 판매했죠. 쉽지 않은 여정이었지만 이를 계기로 커피를 더욱 소중히 여기게 됐습니다. 지금도 교육할 때, 로스팅하던 후배들이 원두를 한두 알이라도 바닥에 흘리면 안타까운 마음이 앞서죠.
한국 핸드드립 문화의 개척자들, 1서3박의 노력 덕분일까요. 서울에서 커피가 진흥하자 박 대표님께서는 서울 외 지역, 곧 강릉으로 진출하셨습니다.
커피가 유행을 타고, 곧 문화로 정착되니 그때부터는 즐기는 방법보다 돈을 버는 법을 배우려 오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스트레스였죠. 커피를 통해 사람들을 만났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로 인해 피로해진 것입니다. 사람들이 없는 곳에서 커피와 좀더 많은 대화를 하고 싶어졌어요. 소금강 부근 진고개, 경포대를 거쳐 연곡까지, 마치 연어가 고향을 찾듯 강릉에 흘러들었습니다.

커피와 대화를 나눠 보니 어떠셨어요. 역시 커피에는 힘이 있던가요?
대화는 역시 즐거웠지요. (웃음) 저는 사람의 인생이, 커피와 대화하면서 행복해지길 바라고 있어요. 커피로 인해 제가 느끼는 행복은 마치 나눌수록 커지고 깊어지는, 마르지 않는 화수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커피를 돈이라고 생각한다면 그 이상의 의미도, 그 이하의 의미도 아닙니다. 하지만 커피를 진심으로 대하고 익히면서 그 문화를 풍성하게 다져 나간다는 생각을 하면 또 다른 의미를 갖게 됩니다. 그때 커피는 비로소 누군가에게는 고단한 생의 쉼표이고, 어떤 이에게는 슬픔을 달래는 위로이며, 또 누군가에게는 아침을 여는 출발선, 또 어떤 만남에서는 긴장을 푸는 유연한 고리로 다시 태어나죠.

BGF리테일과의 만남도 커피의 의미를 확산하기 위해서일까요.
솔직히 처음 협업을 제안받았을 때에는, ‘과연 커피에 진심일까? 경제적인 이득이 목적 아닐까?’하는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기업에서 커피를 대하는 태도에 큰 기대가 없었으니까요. 그러나 긴 시간 노력하고 집중하는 모습에 탄복했고, 거기서 커피에 대한 진지한 자세를 보았습니다.
좋은 커피는 특별한 커피가 아니에요.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커피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쉽게 만들어지지는 않죠. 탄탄한 기본을 바탕으로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대중성을 갖춰야 합니다. 대중성과 장인정신의 접점을 찾아내는 것이 바리스타로서의 사명이라고도 생각하고요. BGF리테일과 바로 그러한 면이 통했던 것 같아요.
진심이 없는 대중성은 흥행으로 끝날 겁니다. 하지만 진심을 갖춘 대중성은 역사로 남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 역사에 같이 하고 싶습니다. BGF리테일의 신의를 믿어봅니다.
get커피는 전국 어디에서나 만날 수 있는 편의점 커피입니다. get커피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요?
get커피에 바라는 것은 단 하나입니다. 대중에게 친구 같은 커피, 편안한 커피가 되었으면 하는 것이죠. 그저 ‘커피를 판다’는 단순한 생각은 버리셨으면 합니다. 저는 커피로 행복을 나눈다고 생각합니다. 커피를 돈으로 생각하는 순간 커피는 더 이상 행복의 매개체가 될 수 없습니다.
뜨거운 여름에 한 모금의 시원한 물이 곧 구원이듯, 행복이 고픈 분에게 우리의 커피가 마음을 채워줬으면 좋겠습니다. 어디에나 있는 편의점처럼, get커피가 사람들에게 ‘손만 내밀면 닿을 수 있는 행복’으로 여겨졌으면 합니다.
get커피를 직접 검증하시고 BGF리테일과 향후 다양한 프로모션, 콘텐츠를 진행하실 계획이시죠. 그 여정에서 반드시 지켜질 원칙도 있을 것 같아요.
커피를 그저 상품으로만 생각하지 않는 것.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우리는 커피를 파는 것이 아니라 행복을 나누고 있는 겁니다. 제가 40여 년간 커피와 함께하면서 늘 잊지 않는 원칙이기도 하지요.
커피로 인해 행복해지려면 품질 또한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가까운 일본의 편의점 커피는 그 수준이 높아서 근처 카페의 매출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하죠. 제가 가진 고집을 get커피에서 함께 지켜갔으면 좋겠습니다.
일찍이 라오스에 커피 재배의 꿈을 심으셨고, 2021년부터는 매년 수백kg의 커피를 직접 생산하게 되셨습니다. 멈추지 않는 도전의 원동력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여행을 떠날 때면 보통 내비게이션을 쓰지 않습니까? 요즘에는 도착시간까지도 알려줍니다. 그런데요. 중간에 휴게소에서 쉬기라도 하면 그만큼 도착시간도 늦어지더군요. 처음 예정한 시간에 도착하려면 결국 과속을 하게 되지요.
목표만 생각하고 달려가다 보면 과정을 놓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목표를 향해 달려가더라도, 곁의 풍경을 놓치지 않고 도전의 과정을 즐기며 하루하루 소중히 살아가고자 하는 마음이 지금의 저를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커피를 배우고, 배우고, 또 배우셨습니다. 아직 남은 공부도 있으시다고요. 가장 최근 커피에게 얻은 가르침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커피는 내가 이 세상을 떠난 후에도 남는다는 것. (웃음) ‘커피는 영원하다’는 단순한 사실을 다시금 실감하는 요즘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감사히 생각하고 있습니다. 커피가 영원하다는 것은, 곧 행복이 영원하다는 의미니까요.
한 번 들으면 쉬이 잊히지 않는 명장의 이름, 박이추(朴利秋)의 이름뜻은 ‘풍성한 수확’이라고 합니다. “전형적인 시골 이름”이라며 미소 짓는 그이지만, 전 생애에 걸쳐 그가 우리나라 커피문화에서 길어올린 수확을 보면 그 뜻은 예사롭지 않습니다. 2024년 get커피와 손잡을 박이추 명장, 따뜻한 커피 한 잔 마시면서, 그의 올해 수확에 가만히 기대를 걸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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