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르륵. 순간 치솟는 거대한 불꽃에 취재진은 저도 모르게 움찔, 뒤로 물러섰습니다. 불길과 가장 가까이에서 웍을 잡은 명장의 눈과 표정은 아무 흔들림이 없는데 말이죠. 벌써 45년, 강산이 네 번 하고도 반 정도는 변할 동안 주방에서 매일을 보낸 여경옥 셰프. 세간에는 형 여경래 셰프와 함께 ‘Chef Lu’로서 우리나라 중국 요리의 대가로 불리고 있습니다. 올해 그는 대가의 자부심을 담아 BGF리테일에서 새로운 제품을 선보일 참입니다.

그가 걸어온 여정은 화려합니다. 1980년대 후반, 10대의 나이로 대형 중식당 ‘홍보석’에서 부주방장 직함을 달더니 22살이 되자 호텔신라 중식당 ‘팔선’에 입사했습니다. 무려 24년간 근무하면서 수석셰프를 역임한 후에는 롯데호텔 중식당 ‘도림’의 총괄 상무 겸 중식당 ‘루이(Luii)’의 오너셰프로 일했고, 지금은 ‘수엔190’을 운영하고 있죠. 1987년부터 지금까지 청와대 출장 대통령 식사를 담당하는가 하면, 각종 국제 중식요리대회의 상을 휩쓸었고 지은 책만도 다섯 권을 넘습니다.
명실상부한 스타 셰프. 하지만 브레이크타임을 맞아 조명을 잠시 낮춘 수엔190에서 처음 만난 중식 대가는 여유를 즐기기보다 홀 정리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밖에 춥죠? 잠시만 기다리세요.” 눈앞을 스친 유니폼 가슴께에는 ‘Ok Sabu(옥사부)’가 선명하게 수놓여 있습니다. 이내 따뜻한 자스민차 한 잔 앞에 두고 마주 앉은 대가의 얼굴에서는 기분 좋은 피로와 눈웃음이 선연하게 묻어납니다. “어디서부터 시작할까요?” 우선은 대한민국 중식의 큰 줄기를 만들어온 옥사부의 1978년으로 돌아가보기로 합니다.

1978년, 그러니까 셰프님께서 열다섯 살 무렵일 때죠. 당시 처음 중식에 입문하셨다고 들었는데요. 45년 외길의 시작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가만 있자, 그게 열다섯인가 열여섯인가…. 중학교를 졸업한 직후였어요. 영등포에 있는 중국집에서 처음으로 일하기 시작했죠. 주방은 그때 제겐 일종의 성역이었고(웃음) 배달 일부터 시작했어요. 간혹가다 주방에서 설거지도 하고. 그땐 다 꼬마라고 불렀어요. “꼬마야 계산해라” “꼬마야 재료 좀 가져와라” 그랬지.
주방에는 언제부터 들어가셨어요?
그해 말인가, 당시 ‘거목’이라는 중식당에서 일하던 형(여경래 셰프)이 저를 불렀어요. 일을 배워보라고. 10여 명의 주방 스탭들 중에 제가 제일 막내였어요. 그때는 정말 시키는 대로 다 했죠. 홀에서 서빙도 하고, 배달도 하고, 설거지도 하고… 여기서 욕 먹고, 저기서 욕 먹고. (웃음) 그렇게 눈치를 열심히 보면서 일을 익혔어요. 머지않아 솥 보는 일을 맡기시더라고요. 솥 보고, 면 삶고, 스팀에 찌고. 그러면서 잡일도 많이 했고요. 제가 화교 출신이라 중국어 공부를 많이 했지만 그 공부랑 중식 전문용어는 또 달라요. 잘 알아듣지 못하면 또 혼나고. 형이 귀띔을 많이 해 줬죠. ‘너 이거 준비해’ 하고.
처음으로 손님께 요리를 냈을 때도 기억하시나요?
1981년 정도였던 것 같아요. 아는 사람이 부탁해서 잠깐 다른 식당 주방에서 일을 했었는데 주문이 들어온 거예요. 제 손으로 요리를 해서 내갔죠. 사장님이 오시더니 “손님이 잡채밥 되게 맛있대” 하데. (웃음) 거목 이후에 ‘홍보석’이라는 대규모 중식당으로 옮겼어요. 주방에만 40명가량 있었으니까 아주 큰 식당이었죠. 지금이야 중화요리 가짓수가 많지 않은데, 그때만 해도 수백 수천 가지의 요리가 있었어요. 각 잡고 가르쳐주지도 않으니 눈대중으로 몰래 관찰하고 일일이 메모해서 밤마다 외웠어요. 출근 시간이 9시, 10시였는데 저는 7시, 8시에 늘 먼저 가 있었죠. 성실해서였는지 부주방장이셨던 주은리 씨가 저를 눈여겨보곤 많이 데리고 다녔어요. 열아홉에는 제가 부주방장이 되어 있었고.
80년대 후반 즈음 호텔 시장이 점차 커지기 시작했죠. 88올림픽 이후 90년대에 들어서부터는 우후죽순 생겨나기 시작했고요. 그 즈음 셰프님도 호텔신라 외식사업부에 입사하셨어요.
시험이 아주 어려웠어요. 열 번은 왔다갔다 한 것 같아. (웃음) 나보다 나이 많은 사람들이 다 신입으로 들어왔는데, 저는 경력으로 입사했어요. 보통 미성년자일 때의 경력은 경력으로 안 쳐주는데, 실기 실력이 좋아서 경력을 고려했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때부터 24년간 쭉 호텔 신라 중식당 팔선에서 일했어요. 중화요리계의 대부 후덕죽 셰프님께 사사받으면서 요리 센스, 감각, 아이디어를 배웠고.
경험과 배움의 연속이었네요. 그 이후 줄곧 청와대 출장 대통령 식사를 도맡으셨고, 각국의 국가원수가 방문할 때에도 항상 셰프님이 계셨어요. VVIP를 주로 담당하신 만큼 굉장히 다채로운 중식을 선보이실 것 같은데요.
제가 요리를 할 때 꼭 지키는 하나의 원칙이 있어요. ‘기본을 지키자’는 것이죠. 흔히 중식은 식재료도 다양하고 조리법이 화려한 요리라고 생각하지만, 너무 기교를 부리려 하면 본연의 맛을 해칠 수 있습니다. 예컨대 탕수육은 달고 신맛이 나야 해요. 그 맛을 낼 수 있다면 생략할 재료는 과감히 덜어내고, 대체할 재료가 있다면 그 재료를 써도 됩니다. 다만 기본은 명확해야죠. 제가 항상 후배들을 가르치면서 강조하는 원칙이기도 해요. VVIP를 위한 것이든, 대중을 위한 것이든 그 원칙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러고 보니 ‘옥사부’ 유튜브에서도 항상 ‘요리가 쉬운 남자’로 본인을 소개하시죠. 저서 역시 집에서 간단히 할 수 있는 중식을 중심으로 소개하고 계시고요. ‘맛의 본질을 살리는 쉬운 중식’이 셰프님의 철학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번에 CU와 협업한 ‘옥사부의 마라짜장’, ‘옥사부의 마라짬뽕’에도 그러한 원칙이 살아 있을까요?
물론입니다. 배추를 똑같이 볶아내도 주방에서 바로 조리했을 때의 맛과 대량생산 공정을 거친 맛은 달라요. 현장에서 사용하는 재료들을 다 넣고 공정을 거쳐 보니 맛의 60%도 구현이 안 되더군요. 그래서 맛의 변질이 최소화될 수 있는 재료를 찾아내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주재료의 맛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는 부재료는 빼고, 본질에 집중한 거죠. 품질을 저하시키면서까지 부재료를 가져갈 필요는 없기 때문입니다.

많은 메뉴 중에 ‘마라’를 선정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마라’가 요새 트렌드잖아요. 시류를 한 번 타 보려고. (웃음) 사실 도전정신이 있었죠. 마라를 다룬 음식은 많지만 편의점 상품으로 성공한 사례는 보지 못했어요. 마라 맛을 다루기가 상당히 어렵거든요. 오리지널 마라와 한국식 마라에 차이가 있으니까요. 처음에는 그 비중을 어디에 두어야 하는지 다소 고민스러웠습니다. 오리지널에 충실하면 거부감이 들 수 있고, 한국식 마라에 치중하면 마라 본연의 맛에서 벗어날 수 있으니까요. 오리지널의 풍부한 맛을 살리면서도 적절한 밸런스를 유지하기 위해 애를 썼지요.
마라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도 마라 본연의 맛을 어렵지 않게 즐길 수 있겠네요.
맞아요. 무엇보다 이 제품은 일반적인 짜장, 짬뽕과는 달리 ‘라면’이기 때문에 소스 맛이 중요했어요. 그 소스 맛을 해치는 재료는 과감히 제하고, 염도 등 기타 라면의 특징을 살릴 수 있는 재료들을 시행착오 끝에 엄선했습니다. 제가 레시피를 개발하면 팔도연구소에서 구현하고, 그 결과물을 우리 형제 셰프, BGF리테일, 팔도에서 각각 테스트했죠. 이를 통해 덜어낼 것은 덜어내고 보완할 것은 보완해 나가는 식으로 제품을 완성했습니다.

어렵지 않은 맛, 쉬운 맛. 듣고 보니 셰프님께서는 중식의 대중화에 상당히 큰 노력을 기울이고 계신 것 같아요. 이번 CU와의 협업도 그러한 셰프님의 뜻이 반영된 것일까요.
홍콩이나 싱가포르 같은 나라는 요리 문화가 굉장히 발달되어 있어요. 서로 레시피를 적극적으로 공유하고 원활하게 피드백을 주고받기 때문이죠. 반면 제가 성장할 당시를 생각해 보면 우리나라 요리 문화는 상당히 보수적인 면이 있어요. 저만 해도 어린 시절 주방에서 어깨 너머로 요리하는 모습을 몰래 관찰하고, 적고, 외웠으니까요. 중식 문화를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일단 기반이 튼튼해야 해요. 모두가 쉽게 만들 수 있고, 자주 접할 수 있어야 기반이 잡히죠. 원활한 피드백이 있어야 고민이 있고, 고민이 있은 후에 발전이 있습니다.
주방장으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후에는 홈페이지를 개설해서 중식 레시피를 일일이 공개했는데, 주변에서 쓴소리도 많이 들었어요. ‘왜 그런 것 공개하고 그러냐’ ‘비법이다’ ‘비밀이다’ 뭐 그랬던 거죠. (웃음) 신경 안 썼어요. 그래서인지 BGF리테일에서 협업 제안이 왔을 때도 쉽게 수락할 수 있었습니다. 중식의 대중화에 편의점이 충분히 기여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함께 일해보니 만나본 BGF리테일 구성원들 모두, ‘좋은 상품을 만들자’는 생각 하나는 확실하더라고요.

셰프님의 뜻 덕분에 이제 편의점에서도 손쉽게 마라 맛을 접할 수 있게 되겠네요. 가장 맛있게 즐길 수 있는 꿀팁도 있을까요?
마라짜장은 기존의 용기 짜장면과 같이 끓인 물 붓고 기다렸다 물 버린 후 스프 넣고 비벼 먹으면 됩니다. 그런데 마라짬뽕은 달라요. 무조건 전자레인지에 돌리세요. 그래야 마라의 특색과 풍미가 확 살아납니다. 그리고 이건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인데, 제 경우에는 김치와 먹으니 일품이더군요. (웃음)
요리사가 가장 행복한 순간은 맛있게, 끝까지 다 먹은 접시를 볼 때예요. 이번 상품도 ‘역시 옥사부가 만드니까 다르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네요. 1월부터 오직 CU에서만 만나볼 수 있으니 많은 분들이 맛보아 주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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